그리스 신화의 꿈의 신인 모르페우스(Morpheus)의 집에는
두개의 문이 있었다고 한다.
잘 깍여져 광채나는 상아문과 얼기설기 뼈로 만들어진 문.
우리가 그 두개의 문중 상아로 되어 있는 곳으로 나서면 좋은 꿈을,
뼈로 만들어진 문으로 나서면 나쁜 꿈을 꾸게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꿈이라는 말은 이중적이고도 양면적인 느낌이 짙다.
사무치게 그리웠던 사랑을 만나고 바래왔던 소망들을 이루는 꿈이기도
하지만 희망이나 사랑의 목전에서 깨어나고 아주 무서운 경험을 하는
악몽이기도 하다.
꿈 꾸었지. 그토록 원하던
근데 이상한 건 눈을 떠보니
또 꿈인거야. 꿈속의 꿈.
겹겹이 날 둘러싼 시간속에
어떻게 난 너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기억속에, 별빛속에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
아~~ 꿈속의 꿈...
또 꿈 꾸었지. 간절한 마음으로,
근데 놀라운 건 눈을 떠보니
네가 온거야. 꿈이 아닌 걸...
겹겹이 날 둘러싼 환상속에
이렇게 다시 너를 만날 수 있다니
진심이야 이제는 나 영원히
너를 떠나지 않겠어.
아~~ 꿈속의 꿈...
- 정혜선, 꿈속의 꿈
무더운 여름. 땀 많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뒤의 기분처럼 나른하고
어지러운 느낌의 이 노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처럼
꿈속의 현실과 현실속의 꿈과의 묘한 섞임을 통해 쉽게 붙잡지도 못하고
떨치지도 못하는 아쉬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꿈속에 또 틀어잡고 있는 꿈. 그 추상화 액자같은 설정은
어찌보면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일상 자체를 꿈으로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실지로 우리 삶을 놓고 보자면 아득하고 쉽게 잡히지 않는 것은
꿈이나 생시나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가까이 있는 듯 하지만 쉽게 얻을 수 없는 마음의 행복,
알아 줄 것 같다가도 나몰라라 도망치는 사람들. 그 곁에 사랑들.
물론 그 꿈은 들리는 사람에 따라 사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사람일 수도 있으며, 궁금적으로 품고 사는 '행복'일 수도 있는 일이고...
정혜선. 가수로서 그녀의 이름은 정말 꿈에서나 만나질 듯 낯설고 생소하다.
콧소리로 힝힝대는 듯 나른한 목소리 또한 카라멜처럼 달콤하기 그지 없는
요즘 여가수들의 목소리와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낯설기도 하다.
한여름 꿈처럼
낯설은 그녀가 처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9년 제 1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였다. 이 대회에서 그녀는 '무지개'로 대상을 받은
조규찬에 이어 '나의 하늘'이라는 곡으로 은상을 수상하며,
모두가 비슷비슷한 목소리, 천편일률적인 멜로디와 노랫말만 일삼던 가요계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도저히 여자가수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몽롱하고 괴팍하기까지한 창법, 사이키델릭한 화성을 선보이며
한영애와 장필순 이후에 답보되어 오던 또 하나의 걸죽한 여류 뮤지션의
탄생을 예고 했다.
1992년에 발표된 그녀의 1집 앨범은 우리의 그런 기대를 만족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90년대 가요계에 새로운 거목으로 자리잡아가던
조동익의 지휘아래 완성된 이 앨범은, 손색없는 편곡과 세션 연주,
그녀의 음악적 힘이 하나로 결합되며 당시 찾아보기 힘든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또 하나의 악기로서 편성된 듯한 자유롭고 환상적인 보컬과
무한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노랫말 등은 낯설음의 선을 넘어
경이로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녀의 새로운 음악을 접할 기회는 전무하다.
'돈'이라는 가요계의 몰악적 자본 논리에 의해 그녀의 음악은 소리소문없이
잊혀져 갔고, 한여름 더운 낮잠처럼 깨어져 버리고 말았다.
늘상 실력파 가수들의 부재, 진정한 뮤지션이 없다고 하지만
실지로는 두드러지는 실력과 재능을 가둬두며
모두가 똑같은 꼭두각시 인형들만을 선호하고 가꾸어 갈 뿐이다.
그것이 악몽이든 길몽이든 모든 꿈이 자기 자신의 내적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어쩔 수 없는 사실처럼, 다양한 문화적 형태와 발현을 인정하지 못하고
달콤한 길몽만을 바라는 가요계의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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